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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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일 신명 30,10-14;콜로 1,15-20;루카 10,25-37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라.
요즘 무더위에 어떻게 잘 지내고 계십니까? 무덥지만 가족과 이웃에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서로를 배려하면서 영육간에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좋은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 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성실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더라도 내일이면 잊혀질 것이다. 그래도 선을 행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당신이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 모른다. 그래도 만들라!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 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 줘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차일 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라!”
어떻습니까? 좋은 일, 선행을 하는데 모순되게도 시기와 질투, 모함과 비난을 받거나, 나의 몸과 마음에 생채기가 생겨납니다. 그럴 때,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라’는 성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묵상해 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고까지는 25km의 거리이고, 광야와 같은 곳이라 예로부터 자주 강도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가곤 하였습니다.
이렇게 강도를 만난 사람을 보고서 그런데, 한 사제가 그 사람을 피해 지나가 버렸고,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 당시 레위 사람은 사제의 보조 역할을 하였는데, 제사에 쓰는 제물을 준비하고, 또 십일조를 거두어들이는 등 성전을 관리하는 일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제와 레위 사람은 자신의 직분에 따라 하느님의 제사를 드리고 성전에서 일을 하는데 충실하였지만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강도를 만난 이웃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야훼 신앙을 변질시키고 일종의 혼합 종교를 신봉한다고 해서 유다인들로부터 이방인, 심지어 개 취급을 받고 있었고,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도 유다인들과는 상종하지 않았습니다.(요한 4,5-9;루카 9,51-56 참조)
그럼에도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난 유다인을 지나가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는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신의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착한 사람입니까? 과거의 잘못된 관계, 적대적 감정이 있었지만 측은지심을 갖고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다가가질 않았습니까?
기름은 여행 중에 뱀이나 벌레 등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 응급 처지를 하는데 필요한 것이었고, 또한 포도주는 물과 같은 것으로서, 여행 중에 없어서는 안되는, 자신의 생명과 직결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아무런 이해가 없고, 더욱이 적대적 감정을 갖고 있던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나눠주지 않았습니까?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여관으로 데려가서 밤새껏 간호해주고, 그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고 부탁하고 떠나지 않았습니까?
데나리온은 로마 은화로서 그 당시 하루 품삯인데, 두 데나리온은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그럼에도 부족하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주겠다면 강도 만난 사람을 잘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이 얼마나 자비로운 사람입니까?
교부들의 성경 주해를 보면, 예루살렘은 낙원이고, 예리코는 이 세상이며, 예리코를 내려가던 사람은 아담, 곧 인류입니다. 강도들은 악의 세력입니다. 사제는 율법이고, 레위인은 예언서이고, 그리고 사마리아인은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은 강도들, 악의 세력에 의해서 초주검이 되어 이 세상에 버려졌습니다. 이렇게 버려진 인간은 율법과 예언서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럼,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상처, 곧 불순종, 죄악을 어떻게 치유해 주셨습니까? 기름과 포도주는 칠성사이고, 노새는 주님의 몸이고, 여관은 교회입니다. 사마리아인이 돌아올 때는 부활의 날이고 재림의 날입니다. 그가 여관 주인에게 준 두 데나리온은 복음을 선포하는 성경이고, 여관 주인은 교회를 관리하는 집사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칠성사를 통해서 치유를 받고, 교회에 맡겨져서 교회의 보살핌 안에서 성경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서 주님의 재림,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 그리스도를 본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나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따지지 말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보면 측은지심을 갖고 그를 도와 주어야 하겠습니다.
반면에 우리도 어떨 때 강도 만난 사람처럼 이웃으로부터 부당하게 선의의 피해를 받고, 오해와 시기 질투 때문에 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겠지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기도하면서 나의 마음의 상처를 착한 사마리아 사람, 그리스도로부터 치유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혹시 내가 강도처럼 부모와 자녀, 배우자에게 준 상처가 있지 않습니까? 그 상처 때문에 나의 가족이 여전히 아파하고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그 상처가 없어질 때 치유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족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2025. 7.13)
- 다음글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2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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