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어떻게 생활해야 하겠습니까?
페이지 정보

본문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스바 3,14-18ㄱ;필리 4,4-7;루카 3,10-18
대림절, 어떻게 생활해야 하겠습니까?
제대 앞 대림환, 세개의 촛불이 밝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본당 곳곳에 성탄 축하 나무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제 2주 뒤면 주님의 성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난 주일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하였을 때, 오늘 복음에서 군중이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요한이 뭐라고 대답하였습니까?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또 요한은 세리들에게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고, 군사들에게는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럼, 형제자매 여러분, 대림절, 우리는 어떻게 생활해야 하겠습니까?
10여일 전에 그 누구도 상상조차 못했던,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불법 계엄이 발령되지 않았습니까? 다행히 계엄 해제와 국민 저항으로, 결국 직무정지로 이어졌지만, 이로 인해 시국이 얼마나 큰 곤경에 빠져 있습니까? 하루속히 시국이 안정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제1독서, 스바니야 예언자의 말씀대로, “주님께서 우리 한가운데에 계십니다. 환성을 올리십시오. 마음껏 즐거워하십시오.”
또한 오늘 제2독서,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난 주간에 보령에 있는 오서산에 올라갔다 왔는데, 해발 791미터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급경사를 1시간 정도 힘겹게 올라야 합니다. 정상에 오르면 긴 능선이 펼쳐져 있는데, 서해의 무창포와 대천항 뿐만 아니라 내륙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습니다. 늦가을 저녁에 오르면 노을이 억새 밭과 어울러 그 운치가 더 합니다.
오르내리는 길목에 월정사가 있는데, 그 작은 절 주변에 좋은 글귀들이 나뭇가지 등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글귀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조그마한 선행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어떤 사람이 부처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저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이 무슨 연유입니까?” 이런 질문에 부처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저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털이입니다. 남에게 줄 것이 있어야 주지, 뭘 준단 말입니까?”라고 되묻자,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재산이 없더라도 줄 수 있는 일곱 가지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재산이 없더라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는 무엇일까요? 잠시 묵상해 보겠습니까?
첫째는 화안시(和顔施)입니다.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이고, 둘째는 안시(眼施), 호의를 담은 눈으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눈으로 베푸는 것입니다.
셋째는 언시(言施)입니다. 말로써 얼마든지 베풀 수 있으니, 사랑과 칭찬의 말, 위로와 격려의 말, 양보와 부드러운 말 등입니다.
넷째는 심시(心施)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주는 것이고, 다섯째는 찰시(察施), 굳이 묻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신시(身施)입니다. 몸으로 때우는 것으로 남의 짐을 들어준다거나 일을 돕는 것이고, 일곱째는 좌시(座施), 때와 장소에 맞게 자리를 내주어 양보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부처님의 말씀대로, 이렇게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얼마나 많이 지니고 있습니까? 잘 사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자선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특별 헌금을 봉헌하는데, 그럼,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평소에 개인적으로 자선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선활동은 물질적 육체적 활동과, 영적 활동으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자선의 일곱 가지 물질적 육체적 활동은 잘 아는 바대로 다음과 같습니다.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며,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나그네를 따뜻이 맞아주며, 병든 이들을 돌보아주고,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주며, 죽은 이들을 묻어 주는 것입니다.
그럼, 영적 자선활동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가족과 이웃에게 가르쳐주고,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외롭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위로하는 것, 이것이 영적 자선활동입니다.
또 나에게 상처를 주고 모욕한 이들을 용서해 주고, 나를 괴롭히는 이들을 인내로 참고 견디며,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 이 얼마나 좋은 영적 자선활동입니까?(‘자비의 얼굴’, 15항,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 칙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참조)
따라서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성탄을 은혜롭고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 대림절 동안 우리가 기도하면서 물질적 육체적 자선활동과, 영적 자선활동을 보다 더 성실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날 맹인이 된 어떤 청년이 아베 피에르 신부님(1912-2009)에게 이렇게 한탄하였습니다.
"신부님, 저는 이제 맹인이 되어서 남에게 신세를 지고 있을 뿐, 더 이상 남을 위해 봉사를 할 수가 없게 었습니다. ” 청년의 이런 한탄을 듣고 피에르 신부님은 말씀하였습니다.
“형제님, 지금 당신은 당신을 위해 식기를 들고 오는 봉사자에게 미소를 지을 수는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그 미소가 봉사자가 해야 할 일을 하는데 활력을 준다면 당신은 이미 봉사를 한 것입니다.” (2024.12.15)
- 이전글주 예수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25.05.17
- 다음글임하소서, 임마누엘 25.05.1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