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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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집회 3,2-6.12-14;콜로 3,12-21; 루카 2,41-52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송년 모임에 갔더니, 어느 분이 축배를 제의하면서 흔히 하는 ‘위하여’가 아니라 ‘껄껄껄’이라고 하더군요. ‘무슨 뜻일까?’ 궁금해서 물었더니, 그분의 말씀이 한 해를 보내면서 자신에게 부족했던 점을 이렇게 아쉬움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좀 더 사랑할 껄, 좀 더 베풀 껄, 좀 더 기쁘게 살 껄’
어떻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며칠 남지 않은, 올 한해 가족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동안 서로에게 소홀히 했던 점을 반성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가족들을 좀 더 사랑하고, 가족들에게 좀 더 베풀면서 올 한해를 잘 마감하고, 새해를 보다 더 기쁘게 맞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초에 하느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후 그의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시고자, 아담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하와를 지으시고 아담에게 데리고 가셨을 때, 아담이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세2,18-23 참조)
이렇게 해서 아담이 낙원에서 하와와 행복하게 신혼생활을 하는데, 그 시절, 아담이 하느님과 주고 받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느님, 어떻게 제 아내 하와를 저렇게 아름답게 만드셨어요?” “그래야 네가 하와를 사랑할 거 아니냐?” “하느님, 어떻게 하와를 저렇게 착하게 만드셨어요?” “그래야 네가 하와를 아껴줄 거 아니냐?” “그런데 하느님, 가만히 보면 하와가 좀 ‘맹한’ 데가 있어요. 그건 왜죠?” “그래야 하와가 ‘너 같
은’ 남의 편을 사랑할 거 아니냐?”
최근에 황혼이혼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황혼이혼의 첫째 원인이 ‘성격차이’ 라고 합니다. 왜, 남녀의 성격에 차이가 있습니까? 그럼, 성격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전설에 의하면, 옛날 옛적에 화성에 사는 남자들과 금성에 사는 여자들은 서로 만나자마자 한 눈에 반했습니다. 사랑의 마법에 걸린 듯 그들은 무엇이든 함께 나누면서 행복하게 생활하였습니다. 비록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지만 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사랑하고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구로 이주해 살게 되자, 그들은 이상한 기억상실에 빠집니다. 자신들이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고, 따라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의 차이를 잊고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해주지 못함으로써 그들은 충돌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남자는 문제가 있으면 자신의 동굴에 들어가 앉아서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도대체 입을 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의 동굴 속에서 나와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잠을 자기 직전까지 전화 통화를 하고서도 ‘내일 아침에 만나 다시 얘기 하자’고 합니다.
이렇게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남녀가 서로 따릅니다. 그런데 서로의 이런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부지간에 원망이 쌓여가고 오해가 증폭되며, 억압과 거부가 나타나고 대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성격차이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부부는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 배우자를 가둬 두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서로간의 의견 충돌이 일어날 때는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어가고 용서하면서 부부간의 갈등과 불화를 극복해갑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제2독서 말씀대로,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어느 부부가 심하게 싸움을 했습니다. 그날부터 며칠 간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다음 날 아침에 회사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어 일찍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 ‘좀 깨워 달라’고 말하기가 뭐해서 큰 종이에다가 “여보, 내일 아침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까, 오전 5시에 좀 깨워 달라.”고 써서 아내의 화장대에 붙여 놓고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오전 6시였고, 아내는 옆에서 아침 화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이런 모습을 보고 남편이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느냐? 자존심을 버리고 편지를 써서 간곡히 부탁을 했는데, 너무 한 것 아니냐?”
남편의 이런 화난 소리를 들은 아내가 말없이 손가락으로 남편 침대 머리맡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까? 거기에 큰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여보, 일어나세요. 오전 5시에요.”
우리 부부는 어떻습니까? ‘부부싸움은 물베기’라는 말이 있듯이 부부생활에서는, 침묵 보다는 말다툼이 더 유익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평소에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대화를 해야 하겠습니다. 대화를 할 때는, 화풀이 하듯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지 말고, 배우자의 감정과 생각을 잘 경청하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방적인 불만과 요구, 잔소리보다는 배우자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줄 줄 알아야 합니다. “1분 말하고, 2분 고개를 끄덕여주고, 3분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 부부간의 대화를 하는데 지켜야 할 매너가 아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의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시인 페타 로제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들의 행복을 밖에서 찾는 부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집에서는 행복이 죽어 있는 듯 보입니다. 그 행복은 사랑이 담긴 말 한 마디로 되살릴 수 있는데 그 한 마디를 하지 않습니다.”
제대 앞에 꾸며진 마구간, 구유에 누워 계시는 아기 예수님, 그리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얼마나 행복하고 평화로운 가족입니까?
따라서 오늘 ‘성가정 주일’을 지내면서 나자렛 성가정처럼 아버지는 성 요셉을 본받고,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를 본받고, 자녀들은 아기 예수님을 본받아 생활하고자 한다면, 우리 가정이 보다 더 화목하고 우리 가족이 보다 더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지옥과 천당의 차이는 서로 불평하면서 생활을 하느냐, 아니면 서로에게 감사하면서 생활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가정생활을 하면서 불만 불평을 하기보다는 서로에게 감사하면서 생활한다면, 우리 가족이 천당에서와 같이 항상 행복하고 화목하게 생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제2독서 말씀을 잠시 다시 묵상해보겠습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202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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