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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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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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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찬일안드레아
댓글 0건 조회 99회 작성일 25-05-1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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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일  신명6,2-6 ; 히브7,23-28 ; 마르12,28ㄱㄷ-34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지난 주간에 설악산에 다녀왔는데, 오색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대청봉에 올랐다 원점회귀하였습니다. 7시간 30분간 힘든 산행이었지만 오래간만의 긴 산행이라 참 좋았습니다.


   설악산 계곡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피워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상부에는 낙엽이 되어 쌓여 있었습니다. 우리 본당 마당에 서있는 나무들도 잎새를 떨구고 있는데, 낙엽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낙엽은 나에게 나무의 눈물입니다.


   나무는 봄에 파릇파릇하게 새순을 꽃피우고 여름엔 푸르고 무성한 잎새로 키우다가 가을이 되면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들게 합니다. 이렇게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온 잎새를 나무는 그런데, , 겨울이 오기 전에 다 떨구어 내는 것일까요?


   곧 다가올, 매서운 추위를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생존을 위해서 자식 같은 잎사귀를 다 떨구어 내야 하니, 나무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우리냐, 아프면 눈물을 흘리지만, 나무는 그럴 수 없기에 잎사귀를 떨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낙엽은 나에게 나무의 눈물입니다.


   이렇게 나무는 매년 겨울이 오기 전에 아픔의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소중한 잎새들을 다 떨구어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봄에 더 푸르고 풍성한 잎새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무처럼 겨울이 오기 전에 떨구어 버릴 것들, 나의 교만과 미움, 나의 질투와 분노를 미련없이 버리면서 내년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백담사 경내에는 비석들이 많이 세워져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비석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남의 삶은 다 보이는데, 내 삶은 보이지 않네 / 남의 허물은 다 보이는 데, 내 허물은 보이지 않네 / 그것 참 남의 죽음은 다 보이는데, 내 죽음은 보이지 않네”(설악무산)


   11월은 위령성월이고, 어제 위령의 날을 지냈는데, 따라서 이 세상을 떠난 나의 가족과 친인척, 이웃을 기억하면서 기도하고, 특별히 연옥에서 자신을 정화하고 있는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남양주에 있는 우리 본당 소화 묘원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묘원 정상부에 올라서서 바라본 정경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묘지들을 둘러보면서 비석을 찬찬히 살펴보니, 대부분 장수하신 분들이었지만 간혹 어린이들, 청년들도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렇듯 죽음은 반드시 나이 순은 아니질 않습니까?


   따라서 오늘은 너에게, 내일은 나에게곧 찾아올 죽음에 대해서 묵상하는, 은혜로운 11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죽음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고영민(1968-) 시인의 출산이라는 시를 잠시 묵상해 보겠습니다.


   화구(火口)가 열리고 어머니가 나왔다 / 분쇄사의 손을 거친 어머니는 작은 오동나무 함에 담겨 있었다 / 함은 뜨거웠다 / 어머니를 받아 안았다 / 갓 태어난 어머니가 목 없이 잔뜩 으깨진 채 내 품 안에서 응애, 첫울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시인은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출산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Ross 1926-2004)는 자서, ‘생의 수레바퀴에서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누에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입니다. 때가 되면 우리는 몸을 놓아버리고 영혼을 해방시켜 하느님의 정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마치 아름다운 한 마리의 자유로운 나비처럼 말입니다.”


   이렇듯 나에게 죽는다는 것은 단지 옷을 벗는 것입니다. 육체는 영혼의 옷입니다. 죽음이라는 짧은 시간에 육체의 옷을 벗어놓은 후 우리는 더욱 빛나는 영혼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입니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따라서 죽음은 내가 부활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과정이고, 내가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일 뿐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은총입니다. 죽음은, 내가 생전에 염원해왔던,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과의 일치와 친교로 이루는 길, 곧 천국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에 대해서 이런 아름다운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 나라 입구에 도착했을 때, 하느님은 그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한다는 겁니다. 그들의 대답에 따라 천국으로 갈지, 못 갈지가 결정되는 거지요.


   그 질문이 뭔가 하면, 하나는 지상에서 생활하면서 당신은 삶의 기쁨을 찾았는가?”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었는가?”입니다.


   그럼, 나는 요즘 기쁘게 생활하고 있습니까? 가족과 이웃에게 기쁨을 주고 있습니까? 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오늘 복음을 보면, 율법 학자가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라고 슬기롭게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질 않으셨습니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18세기 스웨덴 신학자이자 과학자인 엘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erg, 1688-1722)는 저서 위대한 선물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생활 속에서 천국을 짓고 있습니까? 내가 지금 질문할, 다음 일곱 가지 질문에 여러분이 긍정적으로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생활 속에서 이미 천국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나는 하느님을 창조주로 믿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둘째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는가? 셋째 나는 양심적으로 생활해왔는가? 넷째 원수를 용서했는가?

   다섯째 가정에서 부부간에 사랑으로 대하는가? 여섯째 나는 유사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칠 수 있는가? 일곱째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 든 감사하고 마음속에 항상 평화가 자리하고 있는가?”


   형제자매 여러분,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질문에 여러분의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여러분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2024.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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