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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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일
이사66,10-14ㄷ;갈라 6,14-18;루카 10,1-12.17-20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요즘 무척 더우시죠? 건강에 유의하시고, 더위를 잘 피해가야 하겠습니다. 남산에 가면 둘레 숲길을 걷거나, 땀을 흘리며 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이열치열(以熱治熱)할 수 없다면, 조용히 앉아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또는 독서를 하면서 그 느낌을 일기로 써보면, 어떻겠습니까?
아흔 둘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일본의 시바다 토요(1911-2013)는 2010년 아흔 여덟에 첫 시집 ‘약해지지마.’를 출판하는데, 그 여류 시인의 ‘저금(貯金)’이라는 시를 잠시 묵상해봅니다.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 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그리고 5년 뒤, 세상을 떠나면서 백세 할머니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상냥하게 대한다. 그리고 남이 상냥하게 대해준 걸 잊지 않는다.’ 이것이 100년의 인생에서 배운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일상생활을 한다면 불쾌지수도 낮추고, 더위도 잠시나마 피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주일 전입 교우 환영식이 있었는데, 환영 미사에 전입교우 모두가 참례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관심을 갖고 환영하는 것, 얼마나 기쁩니까? 또 세례를 받기 위해 40여명이 주일에 교리를 열심으로 공부하고 계시는데, 예비신자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난 6월부터 구역반장님들이 교적 정리를 위해 애쓰고 계십니다. 따라서 쉬고 있는 가족과 구역 반원을 위해 기도하면서 다시 성당에 다닐 수 있도록 초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민족들의 영화를 넘쳐흐르는 시내처럼 끌어들이리라.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고,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이렇게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본당 공동체를 통해 넘쳐흘러 예비신자, 전입교우, 쉬고 있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하느님의 평화와 위로를 듬뿍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전 본당에 있을 때, 마흔이 넘은 장애인 아들을 전동차에 태우고 주일은 물론이고, 간혹 평일에도 성당에 오는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오가는 길도 힘겨운데, 장애인을 위한 성당 시설과 환경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맨 앞 좌석에 자리를 마련해드리고, 아들에게 평일 독서를 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작은 배려가 소문이 나서 한 두 명씩이 전동차를 타고 성당에 오기 시작했는데, 그 성당을 떠날 때는 5명이나 되었습니다.
우리 본당에서는, 현재 마리안나 자매님이 이웃에 사시는 형제님의 도움을 받아 전동차를 타고 성당에 들어와 미사에 참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몸이 불편하신 노약자들이 전동차를 타고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앞 좌석에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저출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요, 우리 본당에서 유아를 찾아 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현재 4-5명의 유아가 유모차를 타고 성당에 오고 있습니다. 그 젊은 부모님의 신앙, 얼마나 존경스럽습니까?
그런데 유아실은 어떻습니까? 2층 성가대 뒤편에 있어서 유아실로 올라가는 것이 힘겹고, 환경도 열악합니다. 그래서 유아와 그 부모님이 유아실에 격리되지 않고, 1층에서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공간과 좌석을 마련하였는데, 서로 배려와 협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1948년에 설립된 우리 본당 공동체는 곧 8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역사 깊은 성당에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근화 유치원, 소화 묘원, 데이-케어 센터, 광희문 성지 등 지역 사회와 주민을 위해 얼마나 애써 왔습니까?
그럼, 우리는 신앙의 후배들에게 무엇을 남겨 주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본당의 미래이고 희망인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예전 본당 가까이에 봉화산이 있었습니다. 그 산 초입 공원에서 매일 동네 어르신 들이 삼삼오오 모여 쉬고 계셨는데, 뜻있는 몇몇 교우들이 여름에 일주일에 한번 시원한 음료를 나눠 드렸습니다.
또 성당에서 100미터쯤 떨어져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하교할 때, 일주일에 한번, 성당 앞을 지나는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눠 주었더니, 간혹 성당에 들려 놀다 가는 학생들이 생겨났습니다.
우리 본당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일에 한양도성 길을 따라 걷거나 뛰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평일에는 직장인들이 지나갑니다. 이렇게 우리 본당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 성당에서 잠시 쉬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럼, 우리 본당이 지역 주민들의 쉼터가 되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지난 5월 성모의 밤 때 헌화 대신 구역과 단체에서 헌미를 봉헌하였는데, 그 헌금을 다산동, 약수동, 신당동 주민센터로부터 추천을 받은 취약 계층, 25세대에 각각 2십만원씩 지원해드렸습니다. 지역 주민을 위한,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선활동이었습까?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본당 공동체가 함께 수확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봉사자들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본당의 일꾼들, 봉사자를 보내 주십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본당 공동체를 위해서 애써 봉사하고 있는 구역반장, 단체장, 사목위원들을 격려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처럼 미사를 봉헌하는데, 전례 봉사자들의 헌신이 참으로 큽니다. 제대회원, 어린이와 어르신 복사, 성체분배자, 독서와 해설자가 있습니다. 또 성가를 부르고 성가 반주를 하는 단원들, 이렇게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통해 봉사하고 있는 교우들의 헌신이 있기에 우리가 이렇게 은혜롭게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보접기, 미사안내, 헌금계수, 성당 청소, 주차. 차량 봉사 등 보이지 않게 활동하고 있는 교우들처럼 우리도 미사에 참례하면서 또한 봉사를 한다면, 신앙생활에 얼마나 유익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봉사자 여러분, 봉사활동을 하면서 큰 보람을 갖지만, 동시에 그만큼 힘겹고 얼마나 어렵습니까? 격려와 칭찬보다 시기와 질투, 괜한 오해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고, 예수님의 낙인을 내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처럼, 봉사자 여러분, 봉사 활동을 하면서 상처들을 받을 때, 그 상처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여기고 봉사활동에 보다 더 충실히 해야 하겠습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
또한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무엇에 의지하기 보다는 하느님께 의탁하면서 봉사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면서 봉사하고 봉사하면서 기도하도록 합시다. (2025.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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