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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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8주일 코헬 1, 2; 2,21-23;콜로 3, 1- 5. 9-11; 루카12,13-21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덴마크 심리학자 스벤 브링크만(Svend Brinkmann)는 자신의 저서 ‘절제의 기술’에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경험하고, 더 소유하고, 더 성취해내고자 합니다. 그래서 다들 얼마나 분주하게 일하며, 매 순간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런데 과연 행복합니까?”
그럼,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저자는 충만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자기 절제와 자기 통제가 꼭 필요한데, 외부의 유혹과 내부의 욕망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다섯 가지 삶의 원칙, ‘절제의 기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원칙은 ‘선택지 줄이기’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욕망을 구멍이 난 항아리에 비유합니다. 그 항아리에는 아무리 많은 걸 채워 넣어도 뚫려 있는 구멍으로 다 새어 나갑니다. 채워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갈망과 구멍만 남을 뿐입니다.
쾌락의 쳇바퀴나 마약 중독자처럼 항상 최대의 만족을 얻으려는 생각이 삶을 망칩니다. 적당히 만족하는 법, 덜 가져도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쾌락이나 더 나은 선택지를 찾는 대신, 선택지를 줄이면 됩니다. 필요하지도 않은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헤매지 말고, 불필요한 선택지는 과감히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선택하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두 번째 원칙은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바라기’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려는 욕심이 얼마나 큽니까? 그러나 욕심을 부려 전부 다 가지길 원할수록 삶은 장황해 지고 너저분해 질 뿐이고, 결국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 불필요한 욕망을 절제하고, 정말 가치 있고 중요한 단 한 가지에 마음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딱히 별다른 이득이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베풀거나 희생할 줄 아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선한 행위’가 아니겠습니까?
세 번째 원칙은 ‘감사하고 기뻐하기’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어떻게 해야 최대의 이익을 얻을 지만 고민하기 보다는 헌신과 자기 희생,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무언가를 내놓는데, 감사하고 기뻐할 때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각자의 주관적 욕망을 채우는 대신, 타인이나 자연에 좀 더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네 번째 원칙은 ‘단순하게 살기’입니다.
과연 우리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습니까? 삶에서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이 불평등과 지구 온난화를 심화시키고 있습니까? 결국 소수 집권층과 부유한 특권층의 탐욕, 끝없이 더 많이 가지려는 사람들의 욕망 때문이 아닙니까?
많이 갖지 않더라도 이미 가진 것에 기꺼이 만족하고, 불필요하게 소유하고 낭비하기 보다는 서로 공유하고자, 무언가를 기꺼이 내려 놓는 절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다섯 번째 원칙은 ‘기쁜 마음으로 뒤처지기’입니다.
남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유행에 뒤처진 채 약간의 부족함을 즐기는 일입니다. 외부의 유혹이나 내면의 욕망에 우리 자신이 휘둘리도록 내맡기지 말고, 오히려 기꺼이 뒤처지고 더 많이 내려놓을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내려놓는 일과 뒤처지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것에서는 손을 떼고 놓아 버리기로 선택해야만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또 단순한 삶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좋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스벤 브링크만(Svend Brinkmann)의 ‘절제의 기술’을, ‘선택지 줄이기’,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바라기’, ‘감사하고 기뻐하기’, ‘단순하게 살기’, ‘기쁜 마음으로 뒤처지기’를 배워 익혀 실천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오늘 복음을 보면,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자, 어찌 하겠습니까? 그 모든 곡식과 재물을 더 큰 창고를 지어 보관해놓고,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날 밤에 그의 목숨을 되찾아가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따라서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제2독서의 말씀대로,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소유냐 존재냐’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를 소유의 상위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폴 샤르트르가 ‘내가 가진 것이 나다.’라고 말했듯이 소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의 정신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재는 소유의 반대입니다. 소유와 존재는 결코 절충됨이 없이 상반된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옌스 푀르스터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소유하기 위해서(소유 목표) 재산을 취득한다(소유 수단)’와 ‘그 재산(소유 수단)으로 무엇이 되고 싶다(존재 목표)’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소유와 존재는 항상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닙니다. 소유는 존재를 위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소유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 소유는 정당하게 취득해야 할 뿐만 아니라, 비록 정당하게 취득한 소유라 하더라도 그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것, 이것이 소유의 참된 존재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원플러스원(1+1)처럼 과도한 소비, 충동구매로 진짜로 필요하지 도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구입해서 쌓아놓고 있습니까? 이렇게 과소비, 무절제로 낭비하지 말고 절약해서 그 절약한 것을 진짜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면, 이 사회가 얼마나 아름다워지겠습니까?
저는 사찰에 들리게 되면 대웅전에 계시는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경내를 순례하는데, 법당에 걸려 있는 현판들 가운데, ‘자비희사’라는 구절을 좋아합니다,
‘자비희사(慈悲喜捨)’는, 자(慈)는 사랑, 비(悲)는 슬픔, 희(喜)는 기쁨, 사(捨)는 베풂을 뜻합니다.
이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 사무량심(四無量心)을 갖고 산다면, 진흙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을 피우는 것처럼 번뇌 가득한 세상에서 살면서도 속세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움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자들은 다음과 같이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무한한 자비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기쁘고 즐겁게 해주고자 합니다(慈無量心). 둘째 상대방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함께 슬퍼하고자 합니다(悲無量心).
셋째 상대방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함께 기뻐하고자 합니다(喜無量心). 넷째 차별하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자 합니다(捨無量心).
어떻습니까? 형제 자매 여러분, 불자들처럼 자애심을 갖고, 이웃의 슬픔과 기쁨을 공유하며, 사람을 차별없이 평등하게 대하면서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2025.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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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님의 댓글
루치아노 작성일아멘

루치아노님의 댓글
루치아노 작성일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4,6-8.16-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10월26일이거요이용빈(루치아노)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