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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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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행복을 위해 어떻게 생활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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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당동성당
댓글 2건 조회 132회 작성일 25-08-0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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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일 

지혜 18, 6- 9;히브11, 2- 2. 8-19;루카12,35-40

 

 참된 행복을 위해 어떻게 생활해야 하나요?

 

   몇 달 전 어느 연구소에서 우리나라 10대 청소년들에게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재산’(52.1%)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부모(39.5%), 절친한 친구(34.6%), 쉼·휴식(32.8%), 외모(32.1%), 취미·취향(30.8%), 삶의 목표·꿈(30.3%) 등의 순이었습니다.

 

   이런 결과, 나의 자녀와 손주들의 이런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럼, 나는 행복을 위해서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생활하고 있습니까?

 

   왜 사랑하면 좋은 일이 생길까’(스티븐 포스트. 질 니마그, 다우)라는 책에서 저자는 25년 간 자신이 연구 분석한 사랑의 놀라운 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얻게 되는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스피린이 심장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는 잘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 아스피린보다 두 배나 더 효능이 높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치료제입니다.

 

   잘 베푸는 청소년은 노년기에도 심신의 건강을 유지할 확률이 높습니. 누군가를 돕는 행위는 사춘기 시절의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낮추고, 군가를 도우면 일상의 스트레스가 줄어듭니다. 돕는 이가 도움을 받는 이보다 오래 삽니다.

 

   중년을 넘어선 이들에게 자원봉사하기를 권합니다. 수명을 연장할 뿐 아니라 삶의 질을 개선해 주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낮고, 10년간 꾸준히 자원봉사에 참여한 노인들의 사망률도 눈에 뜨게 낮았습니다. 자원 봉사를 하는 것이 일주일에 네 차례 운동하는 것보다 장수 효과가 높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누군가를 도와주는 봉사활동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영육간에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활하는데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우리 자녀에게 몸소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5백여년 전 한 남자는 29년 동안 왕자로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서른 살이 되기 전날에 왕궁 밖으로 마차를 타고 나갔다가 노인과 병자, 그리고 죽은 사람의 시체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 순간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되죠. “첫째 자신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나이와 질병, 그리고 죽음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 둘째 자신의 그 많은 부귀영화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셋째 그 무엇도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그는 자신의 왕궁과 부, 그리고 가족까지 등진 채 인생의 궁극적인 행복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 수행을 하다가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붓다, ‘깨달은 자가 됩니다.

 

   그 후 붓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사성제(四聖諦)로 요약을 합니다. “첫째 인생은 곤경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둘째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다. 셋째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는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 준. 넷째 집착과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는 팔정도(八正道)를 수련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그럼, 팔정도는 무엇입니까? 팔정도는 올바로 보는 것(正見), 올바로 생각하는 것(正思惟), 올바로 말하는 것(正語), 올바로 행동하는 것(正業), 올바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正命), 올바로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正精進), 올바로 마음을 챙기는 것(正念), 올바로 마음을 집중하는 것(正定)입니다.”

 

   어떻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삶의 고통을 없애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부처님의 여덟 가지 덕목을 예수님의 진복팔덕처럼 여기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세상의 종말과 주님의 재림, 나의 죽음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종처럼 우리 역시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허리에 띠를 매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허리띠를 졸라 매듯이 새로운 결심과 굳은 각오로 성취하고자 하는 일을 충실히 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 일상의 탐욕, 헛된 욕망을 억제하고, 기 절제를 통해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또 등불을 켜놓고 있다는 것은 나의 선한 행실로 주변을 밝히는 생활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지난 주일 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탐욕에 의존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이 아니겠습니

?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우리가 자기 절제로 검소한 생활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을 한다면 오늘 복음 말씀대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다 더 풍요로운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우리의 신앙 고백처럼 예수님은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이십니.”(사도 10,42)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저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몸으로 한 일에 따라 갚음을 받게 됩니다.”(2코린 5,10)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보십시오.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야고 5, 8. 9) 따라서 여러분은 장차 하느님의 법에 따라 심판받을 사람으로서 말하고 행동하십시오. 자비를 베풀지 않는 자는 가차 없는 심판을 받습니다.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야고 2,12-13; 4,11-12 참조)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준히 선행을 하면서 영광과 명예와 불멸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나 이기심에 사로잡혀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진노와 격분이 쏟아집니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환난과 고난을 겪을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가 내릴것입니다.”(로마 2, 6-10)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 종말, 주님의 재림, 나의 죽음이 마치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처럼 예고없이 찾아올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살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정의로우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을 보다 더 굳건히 하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처럼 보다 더 자비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025.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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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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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 작성일

너무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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